기원, 역사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스눞히 2016. 9. 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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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1. 스푸트니크 1호 소개

 

스푸트니크 1호(러시아어: Спутник-1)는 소련이 1957년 10월 4일에 타원형의 지구 저궤도로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스푸트니크 1호의 성공은 냉전시대 미국에게 일명 스푸트니크 쇼크를 촉발시켰고, 우주시대와 우주경쟁의 방아쇠를 당겼으며,정치 상황에도 영향을 주었다.

스푸트니크 1호는 과학적으로 중요한데, 위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치는 공기저항으로 지구 대기권의 밀도를 추측할 수 있었고, 무선신호의 전파는 전리층에 대한 정보를 가져다주었다.

 

발사는 국제지구물리관측년인 1957년 10월 4일 19시 28분 34초(국제 표준시(UTC) 기준)에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행해졌다. 위성은 29,000km/h의 속도로 비행했으며, 궤도를 한 번 도는데 96.2분 소요되었다. 1957년 10월 26일에 송신기의 배터리가 다 떨어질 때까지 신호는 22일동안 계속되었다.

스푸트니크 1호는 3개월동안 약 6천만km를 비행한 뒤, 1958년 1월 4일에 대기권에 재진입하여 소멸 되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2. 냉전 체제 당시의 미, 소 관계

 

1950년대 미국과 소련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의 중심축이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자본주의국가들은 소련을 미국에 대항할 만한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세계대전 내내 나치를 주로 상대하던 소련이었지만 미국이나 영국의 지원이 없었다면 버티기 어려웠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당시 미국은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체계와 과학기술 전반에 걸쳐서 당연히 자신들이 앞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3. 스프트니크 1호 발사 후의 정세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소련의 흐루쇼프는 "수소폭탄을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진영은 단순한 체제선전용 허풍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인공위성의 발사에 성공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자본주의국가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올렸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대륙을 넘어설 수 있는 로켓 기술을 소련이 먼저 보유하면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의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공포와 위기감을 준 것이다.

 

게다가 소련은 뒤이어 스푸트니크 2호의 발사에도 성공하는데, 여기에는 라이카(Lika)라는 떠돌이 개를 탑승시켰다. 즉 생명체를 성공적으로 쏘아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발사된 스푸트니크 2호의 무게는 500kg에 달했는데, 이것은 대용량의 수소폭탄을 실은 미사일을 쏘아올릴 만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자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1957년 벵가드 위성을 쏘아올리기에 이른다. 그러나 1.6kg에 불과한 벵가드는 1m 정도 올라간 뒤 폭발하여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우주 진출에 있어 크게 자존심이 상한 미국은 그러다 1958년 익스플로러 1호의 발사에 성공하면서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하게 된다.

 

<스프트니크 2호에 실린 라이카(L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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