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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가왕 조용필 살펴보기

스눞히 2016. 9. 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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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가왕 조용필 살펴보기

 

1. 인물 소개

 

가왕(歌王)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뮤지션으로 명실상부한 현직 대한민국 가수들 중 최고의 전설이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10년대에 걸쳐 차트 1위곡을 보유하고 있으며, 흔히 '슈퍼스타는 맨 마지막에 나온다'라는 말의 유래가 조용필이었다.

 

1950년 3월 21일 경기도 화성군 태생으로, 196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1979년 "창밖의 여자"로 정식 데뷔했다.

수 많은 히트곡과 한국 내 최대 콘서트 인원 동원 기록, 예술의 전당 7년 연속 공연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가수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는 것에 대다수의 사람이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부정하는 사람이 있긴한데 그 중 한사람이 조용필 본인이다. 2011년 4월의 인터뷰에 의하면 스스로 '가왕', '국민가수'와 같은 별칭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단다. 그냥 '조용필'이라는 이름 석 자 그대로 불리기를 원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초로 오빠부대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가수이기도 하다. 당시 9시 뉴스에서 이례적으로 조용필을 따라다니는 오빠 부대 열성팬에 대한 보도를 내보낼 정도였다.

 

세션의 연장개념이었던 개인밴드를 영미권의 밴드의 개념으로 바꾸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2. 주요 경력

 

1969년에 미8군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컨트리 웨스턴 그룹 '애트킨즈'에서 활동하다가 곧 '화이브 핑거스'를 결성해서 활동했고, 주로 미8군 무대에 올랐다.

 

그러다 1971년 5월 3인조 록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트리오는 드러머이자 타악기 연주자였던 故 김대환(드럼), 조용필,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을 주축으로 결성되었다.

 

1972년에는 '드럼! 드럼! 드럼! 앰프키타 고고!'라는 연주앨범도 발매하였다.이때 발표한 곡 "Lead Me On"이 선데이 서울컵 팝그룹 콘테스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여학생을 위한 뮤지칼 '사랑의 일기'라는 앨범에 "님이여", "사랑의 자장가", "케사라", "하얀 모래의 꿈"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게 사실상 조용필의 노래가 들어간 첫 앨범. 이때 KBS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 "돌아오지 않는 강"도 녹음했다.


1972년 "그룹 25시"를 결성해서 활동했고, 1973년 방위병으로 소집되어 해안경비병으로 복무했다.

복무기간 중에도 퇴근 후 음악 활동을 계속하면서 1974년에는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한다.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면서 이 곡과 함께 전설이 시작되었다. 당시 재일교포 고국방문과 맞물려 발표된 이 노래는 부산에서부터 인기가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퍼졌고, 조용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다.

그러나 1977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서 1979년까지 활동이 금지된다.

 

1979년 지금의 그룹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고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이 앨범은 100만장을 팔아치우는 기염을 토했고, 이후 내놓는 앨범마다 히트하면서 1980년대 최고의 히트 가수가 된다.

 

 

 

3. 대표곡

 

대표곡은 "고추잠자리", "그 겨울의 찻집", "그대 발길이 마무는 곳에", "그대여", "기다리는 아픔", "꿈", "나는 너 좋아", "눈물의 파티", "단발머리", "돌아와요 부산항에", "돌아오지 않는 강", "마도요", "모나리자", "못 찾겠다 꾀꼬리", "미워미워미워", "미지의 세계", "바람이 전하는 말", "바람의 노래", "바운스", "비련", "서울 서울 서울", "슬픈 미소", "어제, 오늘,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정의 마음", "창밖의 여자", "촛불", "추억속의 재회",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태양의 눈", "한강", "한오백년", "허공", "헬로", "Q" 등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발표한 노래 대부분이 히트곡이다. 활동 당시 1위부터 10위권안에 모두 조용필 노래였던 시절도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이 히트곡으로만 구성되었는데도 양일 겹치는 노래 없이 이틀이나 진행되었다. ;;

 

정규앨범만 무려 19개, 비정규앨범까지 포함하면 50개에 달한다.

 

4. 음악적 역량

 

그는 가창력 자체만으로도 독보적이라고 할 만한 가수인 동시에, 작곡, 편집, 무대연출까지 못하는 게 없는 모든 방면에서 국내 최정상급 뮤지션이다. 조용필을 성대모사하는 연예인들이 웃음을 목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따라해서 그렇지, 조용필의 가창력은 쉽게 따라할 것이 못된다. 4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2시간 내내 20여곡을 라이브로 흐트러짐없이 소화하기도 했을만큼 그의 가창력은 탄탄하다.

 

데뷔 초기에는 선천적인 미성으로 노래를 했으나, 이후 대마초파동 당시 자숙하던 도중에 판소리에 매료되어 공부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로드 스튜어트와 조 카커 등 허스키한 보컬들을 음악을 따라 부르면서 지금의 창법이 되었다.

 

다만 라이브를 할 때와 스튜디오에서의 음색 차이가 분명이 있기는 한데, 이는 더블링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에 라이브를 할 때도 원래 가진 소리 자체는 얇은 음색이었으나, 앨범에서 들리는 소리는 약간 두껍게 들린다. 다만 라이브를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노래할 때 성량 자체가 상당히 커서 어느정도 커버된다고.

 

다만 초기에 가창력에 대해 지적을 받은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것은 미8군 시절 대세가 패티김, 조영남 등의 스탠더드 팝류의 창법이 노래 잘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초기 가늘고 흐느끼는 듯한 느낌의 조용필은 마치 트로트를 연상시켜서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고, 메이저로의 진출 전까지는 감정 표현이 부족한 가수라는 평가도 받았었다. 단지 시대가 만든 편견의 희생양이었을뿐...오히려 그 시대의 전설적인 세시봉 출신이자 가창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송창식이 거의 그 시대 유일하게 그를 꿰뚫어 보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스로 인터뷰를 통해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를 단 한명만 꼽아보라는 말에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조용필을 지목했던 일화도 있다.

 

게다가 시도한 장르도 매우 다양했다. 록(미지의 세계), 팝(Jungle City), 발라드(슬픈 베아트리체), 블루스(대전 블루스), 민요(자존심), 트로트(허공), 동요(난 아니야), 오페라(도시의 Opera), 18집에서는 안토닌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신세계 교향곡)에 가사를 붙인 '내일을 위해'라는 곡에서 클래식, 19집의 타이틀곡인 Hello의 경우엔 일렉트로니카까지 커버했다.

 

나이 숫자가 무색하게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 젊은 트렌드에 맞춰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평소 케이티 페리, 브루노 마스, 마룬 5와 같은 음악을 즐겨 듣고 19집 작업의 모토를 아예 '음악의 깊이 보다는 편안함'과 '세대 간의 융합'으로 잡았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2011년 문화일보가 실시한 창간 20주년 '대중음악사 20년 최고의 가수와 노래' 조사에서 당당하게 가수와 노래 부문 모두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이승철, 3위가 서태지, 4위가 김건모, 5위가 소녀시대. 

 

 

 

5. 사건 사고

 

길었던 활동경력 중 오점이라면 대마초 흡연 사건으로 1975년 12월 대마초 파동이 연예가를 휩쓸었을 때 조용필 역시 구속되었다. 과거에 뭔지도 모르고 피우다 알레르기 반응이 생겨 곧 중단하긴 했어도 대마초를 몇 차례 피웠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죄가 경미해 활동금지는 면했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인기가수 대열에 서자 과거 경력이 다시 문제가 되었고, 결국 다른 가수들처럼 1979년 완전 해금까지 활동금지가수가 된다.

 

최근 앨범 Hello가 발표된 이후 신대철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조용필의 빼앗긴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2000년에 저작권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현재 자신의 곡들 중 31곡의 저작권을 지구레코드의 임정수에게 빼앗기는 일이 벌어졌다. 뒤늦게 깨닫고 법정까지 갔으나 결국 패소하였고 이 31곡의 저작권은 임정수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인 임재우에게 상속되어 넘어갔다.


<빼앗긴 31곡>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너무 짧아요, 슬픈 미소, 촛불, 간양록, 일편단심 민들레야, 잊을 수 없는 너, 여와 남, 물망초, 고추잠자리, 내 이름은 구름이여, 너의 빈 자리, 못 찾겠다 꾀꼬리, 생명, 난 아니야, 꽃바람, 자존심, 비련, 산유화, 한강, 나는 너 좋아, 황진이, 정의 마음, 눈물로 보이는 그대, 어제 오늘 그리고, 나의 노래, 그대여, 미지의 세계, 아시아의 불꽃, 여행을 떠나요

 

그러던 2013년 10월경 해당 곡들의 저작권을 조용필이 다시 되찾았다고 한다.자세한 합의 내용은 양자 합의에 의해 5년간 비밀을 유지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6. 주요 기록

 

주요기록이라고 했지만... 너무 많다. ㅠㅠ

 

본격 self-made 아티스트시대를 연 주인공(작사, 작곡, 편곡, 연주, 프로듀싱).
대중가수 최초 학문연구회 발족 - 조용필學 (Choyongpilogy) -(99년)

대중가요 최초로 교과서에 수록 - 친구여 (5집)
대중음악계에 '콘서트' 문화 정착(히트곡을 연속해서 부를 뿐인 리사이틀의 시대에서, 쇼 퍼포먼스가 결합된 '콘서트'로의 변화를 주도)
대형공연의 시작과 활성화 - 체육관 콘서트, 스타디움 공연 등.

국내 최대 인파 동원한 야외 Concert - 해운대 10만명 이상 (1993년)
공연 사상 최초 5만명 동원 - 35주년 The History’ (유료관객 4만5천명)
세계최초 7.2서라운드 콘서트 - 2007.12월

한국 20세기 최고가수로 선정 및 수상 - (설문조사1위 1999년)
광복60년 영향력 있었던 인물 1위(연예인부문) - 한국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
국내 최초 단일앨범 100만장 돌파(기네스 인정, 1991년)
국내 최초 음반총판매량 1천만장 돌파(1994년, 99년 현재 국내외 2천만장 판매)

한국 최초 Digital 녹음 - 6집 (1984년)
가요사상 가장 긴 대곡 (1989년) "말하라 그대들이 본것이 무엇인가를" (19분30초)[31]
국내 최장수 Rock Band -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since 1980년~ 현재)
국내 대중가수 최초 미국 카네기홀 공연 (1980년)

국내 대중가수 최초 공산국가 중국 북경 공연 (냉전시대, 국교 전 1988년)
국내 대중가수 최초 예술의 전당 공연 'Opera hall Concert' (1999년)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곡당 1위 횟수 제한의 계기 제공 (1983년)
한국 대중음악사 최초의 국내가수 팬클럽 '오빠부대' 탄생 (자생적인 팬클럽)
한국 최초의 Concept 음반 - 13집 "The Dreams" (1991년)

일본 NHK 홍백가합전 한국가수 최초 및 연속참가(87, 88, 89, 90년)
일본 NHK hall 외국가수 최초 Concert (1983년)

최초 단일앨범 100만장 돌파 - "추억의 미아" (1986년)
MBC 선정 정부수립 50년 최고의 스타상 '가수부문' 수상 (1998년)
건국 이후 '최고의 가수'로 선정 - 조선일보& 한국갤럽 조사, (1998년)
한국가수최초 평양(북한) 류경체육관 단독공연 - 2005.8.23

 

KBS 라디오 24주 1위 - 고추 잠자리 : 6개월여 동안 1위 기록

MBC'10대가수 가요제' 가수왕 수상 6회 (80, 81, 83, 84, 85, 86년)
KBS '가요대상' 최고인기가수상 수상 4회 (81, 82, 83, 85년)
TBC '방송대상' 최고 가수상 (80) 총 11회

87년이후로 후배들을 위해 더 이상 상 안받겠다 선언 - 콘서트 위주의 음악활동 계기

 

가수최초 명예의 전당에 등재 - MBC (2000년)

예술의전당 개관(93년) 이후 최고치 기록갱신 - 유료판매율 1위(87%)
예술의전당 개관(93년) 이후 20년간 가장 높은 예매율(104%) 기록 (2008년)

 

탄자니아로부터 문화훈장 수훈 (2001년)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 수훈 (2003년)

한국인 최초 범 아시아 콘서트 - 팩스뮤직카 - (84년~2004년간 11회)

 

한국인 최초 일본에서 골든디스크상 수상 (2회 - 84년, 88년)
제 1회 골든디스크상 대상(대상과 본상, 인기상을 모두 석권) - (86년)


 

대한민국 역사 움직인 100인에 선정(문화) - (2007년)

과소 평가된 아티스트 - 여론조사 1위 조용필 - (2003년)

 

대한민국 100대 명반 두 장 선정 - 조용필 1집(29위) / 조용필 7집(76위)

 

19집 <Hello>의 선공개곡 <Bounce>는 국내 음원 차트 개설 이래 만 63세, 데뷔 45년차 최고령 1위 기록(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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